1. 이순신 그는 누구인가
본관은 덕수, 자는 여해, 시호는 충무이다. 이순신은 한국사에서 위대한 인물의 한 표상이다. 16세기 조선의 무신으로 임진왜란 및 정유재란 당시 수군을 통솔했던 제군이다. 전 세계를 통 들어도 23전 전승을 거둔 손꼽히는 수준의 전훈을 남긴 최고의 명장 중 하나입니다. 그의 주요 해전은 1592년 5월 옥포해전, 1592년 6월 당포해전 1592년 7월 한산도 대첩 1592년 9월 부산포해전 그리고 이 영화의 시대인 1597년 9월 명량해전 1598년 11월 노량해전입니다. 이순신은 바로 이 노량해전에서 전투 중 사망하게 됩니다.
2. 신에게는 아직 12척의 배가 있습니다
명량은 실제 역사의 사실을 근거로 제작된 영화입니다. 1597년 정유재란 때 이순신은 수군통제사에서 파직당하고 조선의 수도인 한양에서 고문을 당하게 됩니다. 그사이에 음력 7월 거제도 앞 칠천량에서 원균이 이끄는 조선 수군은 패전하게 됩니다. 이때 일본의 장군인 히데요시는 이순신을 높이 평가하고 있기에 전라도 땅을 휩쓸고 한양까지 공격합니다. 이순신에게 연패를 한 일본 수군은 해적 왕인 구루지마를 고용하여 조선의 왕을 잡기 위해 계획을 잡습니다. 이순신이 다시 수군으로 복귀를 합니다. 상황은 좋지 않습니다. 해남 어란진에 일본군이 300척이 모여들었고 조선 수군의 판옥선은 고작 12척이 전부였습니다. 게다가 12척은 칠천량에서 전투를 패하고 남은 배였습니다. 이순신의 진영의 부하들은 수적으로 상대가 되지 않기에 수군을 모두 육군으로 편입시키고 좀 더 안전한 방어에 힘쓰자고 이야기하였으나 이순신은 끝까지 수군이 지켜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조선 수군에서는 탈영병이 발생하게 되고 수군의 사기마저 꺾여 있습니다. 이순신은 극복하기 노력합니다. 그러던 중 눈여겨본 지역 답사를 나갔는데 그지역의 이름은 울돌목(명량)입니다. 물살이 울면서 돌아나간다고 합니다. 게다가 하루에 4번이나 물살의 방향이 바뀐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이순신은 생각에 잠깁니다. 일본에 있던 첩자로부터 소식을 알게 되고 내일 울돌목(명량)에 일본 수군의 공격이 있을 것입니다. 이순신은 바로 해남 우수영으로 이동을 합니다. 그러자 전쟁을 하기도 전에 이순신 부하들은 승산이 없다며 전쟁을 반대하게 되고 이순신은 자신의 거처인 막사를 모두 불태웁니다. 그리고 그는 말합니다. 이제 죽음을 피할 곳이 없다 육지라고 무사한 줄 아느냐 살고자 하면 죽을 것이고 죽고자 하면 살 것이라고 합니다. 그렇게 조선의 수군인 판옥선은 출정합니다. 좁은 통로의 형태인 울돌목에서 일 자진이라는 일자로 평행하여 진을 치게 됩니다. 일본 300척의 수군이 진격을 시작했고 영상에서 보이는 300척의 수군은 어마어마했습니다. 이순신은 단 1척의 배로만 진격을 한 다음 약 4대 이상을 격파하게 되고 다시 본진으로 유인작전인 후퇴하게 됩니다. 이때 가장 중요한 것이 죽음 앞까지 갔던 병사들이 사기가 높아져 그 누구보다도 용감한 병사들이 되어 싸울 의지가 있다는 것을 영상에서 보여줍니다. 울돌목에 들어오게 된 수군에 공격을 시작하고 화포에 공격당한 일본 수군은 물살이 아주 빠른 조류 때문에 배들이 엉키게 되면서 침몰하기 시작합니다. 그렇게 회오리 물살이 있는 울돌목에서 수군을 몰살시켜 버립니다. 결국 조선의 수군은 12척의 배로 300척 일본 수군을 단 하루 만에 격퇴시키는 업적을 남기게 됩니다. 승리를 이끌게 됩니다. 주연 배우인 최민식은 실제로 당시의 이순신 장군 나이와 2살밖에 차이 나지 않았을뿐더러 그 시절의 감정 표현을 아주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본모습은 없지만 약 400년 전의 모습은 어땠을지 알려주는 아주 감명 깊은 영화였습니다. 시간이 된다면 영화를 꼭 보시길 추천드립니다.
3. 명량해전 역사적 기록
실제 역사적인 명량해전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정유재란 당시에 1597년 9월 16일에 일어난 일이며, 조선의 판옥선 13척과 일본 수군 함대 133척이 맞붙어서 고작 13척이었던 조선의 수군이 압도적인 승리를 이룬 전투입니다. 1척의 대장선에 일본 수군이 벌떼처럼 공격하고 백병전을 펼쳤으나 화포에 모두 침몰하였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헷갈려하는 것이 명량의 한자어로 밝은 명자로 기억하고 있으나 울다 명입니다. 그래서 명량과 울돌목은 같은 명칭입니다. 그리고 전투에 참가한 일본 수군의 수는 난중일기, 선조실록, 행록 등 기록이 전부 제각각입니다. 133척이다, 200척이다. 실제로는 330척이 조선에 향해 왔고 전투에 참가한 수군은 133척이 맞습니다. 300척 이상임에도 133척만 전투한 것은 지형으로 인해 모든 배가 전투에 들어가지 못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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